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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오솔길
부탁받고, 부탁하고…
이강진 목사 (이대목동병원 원목실)
2014년 12월 25일 성탄절 예배를 드리기 직전에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
있었던 일이다. 예배실 입구에서 한 여인의 울부짖 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
음과 절규가 들려왔다. 막 예배를 시작하려던 때였 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
다. 급히 달려가 이유를 물어보니 자신의 어머니가 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마태복
갑작스럽게 심정지가 일어나 심폐소생술을 받고있 음 25:14-15)”주인의 신뢰에 응답하여 그의 마음을 헤
으니 와서 기도해 줄 것을 눈물로 호소하고 있었다. 아리고 기쁘게 하려고 애쓴 종, 그것이 소명 가운데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여 있던 환우들에게 양해를 살아가는 목회자와 그리스도인의 참모습이 아닐까?
구하고 중환자실로 달려갔다. 급박한 상황을 대변하 인간의 고통과 죽음, 유한함 앞에서 무기력함과
듯 고성과 함께 여러 명의 의료진들이 침상 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자괴감이 들 때가 많
그 주변에서 분주히, 처절히 움직이고 있었다. 환자 다. 신학자 미로슬라브 볼프는 “고통을 지켜보는 사
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기도를 드리려고 했지 람들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하
만 여의치 못했다. 기도를 위해 서 있을 만한 공간이 지만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그들의 위로이시며 그들
보이지 않았다. 결국 의료진과 뒤엉켜 이리 저리 밀 의 고통이신 하나님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부탁
리며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하나님 불쌍한 영혼 하고 부탁받는 자로서의 삶을 통해, 인간의 아픔 한
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어떻게 기도드렸는지 기 가운데서 진정한 주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네
억조차 나지 않았다. 주님께 부탁했다는 사실만이 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는 자명한 진리를 만나게 되
기억났다. 었다. 결국 주님께 도움을 구하고 주님만을 바라볼
이대목동병원에서의 목회가 11년째가 되었다. 요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것이 병원 사역을 통해 얻은
즘 부쩍 이 길을 돌아보게 된다. 목회란 무엇이고. 나의 고백록이다.
내가 하는 사역은 무엇인지,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얼마 전 2014년 12월에 세례를 받고 소천했던 성
지…. 결론과도 같은 단어는 ‘부탁’이었다. 주님의 부 도님의 딸로부터 편지를 받게 되었다. 미안한 일이
탁을 경청하고 고통 가운데 있는 영혼들의 부탁을 지만 잊고 지냈었다. 기억하건데 기도받는 것조차
듣고, 그것을 다시 주님께 부탁하고, 주님의 일을 위 강하게 거절하고 외면했던 분이었다. “저희 아버지
해 돕는 손길들에게 부탁하고…. 목회자의 역할로서 는 마지막까지 세례증서를 손에 꼭 붙들고 계셨어
뿐 아니라 건강한 영혼은 잘 부탁하고 부탁을 기꺼이 요. 남은 마지막 순간에 주님께 인도받고 저희 아버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대방이 나의 지는 구원받으셨어요. 분명 운명하실 때 믿지 않는
부탁을 들어줄 것인가에 대한 의심과 거절하면 어떻 저희 가족 모두도 그걸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남
게 하지 라는 두려움이 있다면 쉽게 부탁하기가 어렵 은 가족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믿고 기도
다. 또한 상대방도 나에 대해 믿음과 수용에 대한 확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부탁을 들
신이 없다면 부탁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부탁은 믿 으시고 거절치 않으시는 주님! 그 분의 부탁을 들으
고 맡기는 것이다. 며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음에 진정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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