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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보인다 세상이 보인다





                                         가가와 도요히코(賀川豊彦)
                                       『사선을 넘어서


                                       (死線を越えて)』, 1920











                                                                      조명철 권사 (고려대학교 사학과 교수)








               한국이 일본의 침략을 받아 식민지로 전락                 앙적 갈등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던 시기에 한국의 크리스천들은 조국의 독립                   일본의 크리스천은 일본의 대외팽창과 침략
             을 되찾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다. 이러한                 을 철저하게 부정할 경우, 단순한 반전론이나
             사실은 1919년 3·1 독립운동이 일어났을 때, 33           평화론에 머물지 못하고 궁극에는 일본이라는
             인의 민족대표 중에서 16명이 크리스천이었다                 국가를 부정해야 하는 매우 위험하고 곤란한
             는 기록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입장에 놓이게 된다. 물론 한국인의 눈에는 용

               3·1 독립운동을 계기로 우리 민족의 독립운               기 있고 양심적인 일본인으로 비쳐지겠지만.
             동은 1945년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조국의 번영을 마냥 찬양만 할 수 없었던 일
             이처럼 식민지 조선에서 독립운동이 거세게 일                 본 크리스천의 고민을 읽을 수 있는 책이 1920
             고 있던 시기에 일본의 크리스천은 한국과 중                 년 개조사(改造社)에서 『사선을 넘어서』라는 제
             국으로 침략을 확대하고 있던 자신들의 조국을                 목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실제로 빈민가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                           복음을 전하면서 빈민구제에 앞장섰던 가가와
               일본의 크리스천은 아시아로 팽창하는 조국                 도요히코라는 젊은 목사가 자신의 이야기를 소
             을 찬양해야 했을까, 아니면 아시아의 민족과                 설로 꾸민 책이었다.
             국가들을 괴롭히는 자신의 조국을 비난해야 했                   가가와 목사는 신학교를 나왔지만 폐병에 걸

             을까.                                      려 시한부 인생을 살다가 뜨거운 신앙적 체험
               외세의 침략만 받다가 식민지로 전락한 한국                을 경험한 후에 소외된 빈민들에게 복을 전하
             의 크리스천은 이러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                 기 시작했다. 가가와 목사의 자전전 소설 『사선
             다. 한국의 크리스천은 빼앗긴 조국의 독립을                 을 넘어서』는 문학적으로 좋은 평을 받지 못했
             되찾는 일과 자신의 신앙이 전혀 모순되지 않                 지만 어쩐 일인지 그해에 백만부가 넘게 팔리는
             았기 때문에 일본의 크리스천이 겪어야 했던 신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지금까지 200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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