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 - 201511
P. 14
기획 - 종교개혁 498주년 기념
살아있는 교회, 죽은 교회 - 평신도가 바라본 종교개혁
이군호 권사 (성균관대학교 학부대학 초빙교수)
삶과 죽음의, 혹은 살아있다는 것의 기준을 의학 시의 라틴어 성경(Vulgata)을 독일어로 옮기면서 루터
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가 아닌 철학적으로 정한다면 가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다 쉽
저는 ‘소통’을 말하고자 합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게 성서를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소통한다는 뜻이며, 소통하지 못하는 존재는 죽은 존 이해하기 쉬운 민중의 언어로, 쉽고 구체적이고 명징
재라는 말입니다. 우리 몸의 생명의 핵심인 심장은 혈 한 어휘들로 성경을 채워 갔습니다. 이제 복음은 지식
액을 순환·소통시켜 여러 신체기관들에게 보내주고, 인들만이 소통하던 폐쇄적인 라틴어에서 평민들이 소
인간의 뇌는 신경조직을 통하여 각 기관들과 소통합 통하는 일상적인 언어로 옷을 갈아입습니다. 소수의
니다. 살아있는 정치는 여론과 민의의 정상적인 소통 귀족과 성직자만 읽을 수 있던 성서에서 보다 많은 보
을 통해 가능해지고, 경제가 살기 위해서는 자본과 통사람들이 읽는 성서로 바뀐 것이죠. 루터의 성서번
물류의 원활한 소통이 관건입니다. 수천 년 전의 고전 역은 그래서 종교적 의미 이외에도 독일어의 현대화와
(古典)이 현재 우리의 삶과 소통하는 순간 그것은 그 문법의 통일에 중요한 초석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게
저 낡은 종이뭉치가 아니라 ‘산 지식’의 보고가 됩니 됩니다. 복음과 인간의, 성서와 교인들의 보다 폭넓고
다. 소통은 삶이요, 불통은 죽음입니다. 무릇 사람이 직접적인 소통은 루터의 성서번역이 가져온 ‘살아있는
나 공동체나 내적, 외적으로 소통하지 못하면 죽음에 교회’의 한 징표로 보입니다.
이르게 됩니다. 독일의 기독교인들을 타락한 교회의 권위로부터 해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교회와 죽은 교회의 기준도 방시킨 것은 성서번역만은 아니었습니다. 루터는 나아
소통에 있다고 봅니다. 교회가 안팎으로 소통하지 못 가 ‘오직 예수’ ‘오직 믿음’이라는, 당시로서는 아주 혁
한다면, 즉 교회가 복음을 외면하고, 신도와 민중의 신적인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인간이 오직 예수라는
삶을 도외시하고, 사회현실과 단절된다면, 그 교회는 중보자를 통하기만 하면 그에 대한 믿음만을 가지고
이미 고립된 섬이며 죽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약 오 도 인간과 신이 직접 만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신의
백 년 전 종교개혁 당시에 루터 시대의 교회가 그러했 무한한 은총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설파했습니
습니다. 중세 천 년을 거치며 세속권력과 때론 결탁하 다. 교황이나 성모 마리아 혹은 성직자 등이 누렸던,
고 때론 경쟁하면서 힘이 너무나 커져버린 교회는 많 성서에 기초하지 않은 비정상적인 절대적 권위를 부
은 타락상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교회 내부의 파벌정 정함으로써 인간과 절대자가 보다 내밀하고 친숙하게
치와 매관매직에 몰두했던 성직자들은 교인과 민중의 소통할 수 있도록 신학적 토대를 만들어갔습니다.
영혼과 삶으로부터 단절되었고, 면죄부 판매 등 세속 루터는 인간과 세상과 괴리되었고 심지어는 복음과
적 이익에 혈안이 되었던 교회는 복음으로부터 멀어 도 단절되어 있었던 죽은 교회에 소통의 길을 터줌으
져 버렸습니다. 로써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그것은 인
루터의 종교개혁은 분명 죽어가는 교회를 살리고 간과 복음과 절대자를 보다 가깝게 묶어주고 소통시
자 하는 뜻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종교개 켜주는 길이었으며, 폐쇄적으로 닫혀있던 복음과 교
혁이 교회 내부만 아니라 교회 밖의 사회에 미친 영 회의 문을 활짝 열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과
향과 파급력은 실로 역사적 의미를 갖습니다. 교황으 구원의 길을 열어준 바로 그 소통의 지혜였습니다. 지
로부터 파문을 당하고 쫒기는 몸이었던 루터는 바르 금 한국의 교회는 얼마나 열려있으며 이웃과 세상과
트부르크 성에 은거하면서 성서번역에 몰두합니다. 당 얼마나 소통하고 있습니까?
14 2015 /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