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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중고등부 교회학교 시절에 어느 장로님께서 설교를 하시면서 아침에 수도
     꼭지를 틀면 당연히 물이 나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신 기억
     이 납니다. 전쟁을 겪고 고난의 시대를 거쳐 온 세대만이 느낄 수 있는 절박한 고마
     움일 수도 있겠으나, 성서에서 말하는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의 실천이기도 합
     니다. 이 설교말씀 속에는 한 줄기 수돗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들
     인 노고에 대한 인정, 그리고 그 정성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이 들어있습니다. 내가
     타는 버스의 기사님은 요금을 받고 승객들을 이송시켜준 것이니 내가 굳이 고마움
     을 느낄 필요가 없는 걸까요?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내가 일하는 일터를 깨끗하게
     정돈시켜 놓은 미화원은 다만 임금을 받는 대가로 일을 한 것일 뿐이니 감사하다고
     말할 이유가 전혀 없는 걸까요? 아닐 겁니다. 사람은 기계나 로봇이 아니니까요. 사
     람과 사람의 관계는 정서적 상호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사람과 기계 사이의 관계와
     는 전혀 다릅니다.

       대부분의 선진국 국민들의 언어생활에서 “고맙다” “감사하다”는 표현은 거의 일상
     화되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독일의 경우도 “당케(Danke!)”라는 말이
     워낙 사람들의 입에 일상적으로 붙어있어서 저는 과연 이들이 진심으로 감사하는
     것인지, 아니면 감사한 마음이 없어도 습관적으로 혹은 예의상 저렇게 말하는 것인
     지 진지하게 의심한(!) 적이 있을 정도입니다. 이웃 일본인들의 언어생활에서도 “아
     리가토 고자이마스”라는 감사의 표현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넘친다고 알고 있습니
     다. 이들의 언어가 사람의 내심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고맙다
     는 말 한마디는 듣는 사람뿐만 아니라 말하는 사람도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너무도
     손쉬운 생활의 청량제가 아닐까 싶은데, 우리에게 감사의 언어는 상대적으로 상당히
     인색한 편이라고 봅니다. 귀국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주변의 어떤 지인은 왜 툭하면
     고맙다고 말하느냐고 저를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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