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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나들이

         아브라함의 제사 1636년 캔버스에 유채  장감을 더 고조시킨다. 왼쪽 손으로 이삭의 얼굴을
                                 눌러 그의 목을 베려고 했던 아브라함의 눈이 휘둥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제사                그레 해진다. 난데없는 천사의 간섭으로 아브라함
                                 은 날선 칼을 떨어뜨린다. 불과 몇 초만 지났어도
  호형(弧形) 구도로 되어 있는 화면에는 세 인물     이삭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이 등장한다. 위로부터 천사와 아브라함, 이삭의 순
서로 되어 있다. 화면에 제시된 장면은 다급했던         이삭은 판화 <아브라함과 이삭>에서 보았던 어린
순간을 보여준다. 이삭을 제물로 드리기 직전 천사      아이가 아니다. 건장한 청년으로 자랐다. 이삭의 두
가 나타나 아브라함의 손목을 잡으며 제지한다. 매      팔은 단단한 끈에 묶여 있으며 등 뒤에는 그가 가
우 극적인 순간이다. 명암대비를 강조해 화면에 긴      파른 산을 낑낑거리며 지고 온 장작이 깔려 있다.
                                 이삭은 얼마든지 자기를 죽이려는 늙은 아버지에
                                 게 반항할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힘은
                                 있되 사용하지 않았다. 순종 가운데서 진정한 힘이
                                 나온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어떤 존재였을까? 그 아들
                                 은 모든 소망을 건 아들이요, 특별하고 유일한 위
                                 로가 되는 아들이 아니었던가? 아브라함은 아내와
                                 두 번씩이나 헤어진 아픈 경험, 조카와의 이별, 또
                                 다른 아들 이스마엘을 떠나 보내는 등 실로 험난한
                                 삶을 걸어 왔었다. 가까스로 얻은 아들을 요구하셨
                                 을 때 아브라함은 충격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
                                 다. 그에게 이삭은 삶의 마지막 희망이요 기쁨이었
                                 기에 아들을 빼앗긴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
                                 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표정에 주목해보자. 그는 천사의 나
                                 타남에 매우 놀라워한다. 예기치 못한 천사의 등장
                                 으로 어리둥절했으나 천사의 방문목적을 깨달은
                                 후 비로소 안도한다. 아브라함은 방금 전까지만 해
                                 도 처연한 심정이었으나 이제는 눈망울이 초롱초롱
                                 빛난다. 하나님의 ‘절묘한 개입’으로 아브라함은 아
                                 들을 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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