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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증언에 의해 내 오류가 입증되지 않 모든 회의가 끝나고 루터는 비텐베르크로 돌
는 한, 혹은 분명한 이성과 성경의 증거에 의 아가기 위해 힘없이 말을 몰았습니다. 튀링엔
해 설득되지 않는 한, 나는 어떤 것도 철회할 (튀링겐) 숲의 알텐슈타인성 근처 계곡을 지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교황이나 공의 나던 중 어디선가 무장한 기사들이 루터의 마
회의 권위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종종 차를 가로막았습니다. 그러더니 루터의 머리
서로 모순되었고 잘못해 왔기 때문입니다. 나 에 검은 두건을 뒤집어 씌웠습니다. 루터는
는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 내 양심에 매여 그를 해하려는 자객들인 줄 알고 이제는 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철회할 수 없으며, 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사건
철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양심을 거스르는 은 프리드리히 선제후가 루터를 안전하게 도
것은 우리에게 안전하지도 않고 허용되지도 피시키기 위해 자기 부하에게 은밀하게 내렸
않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아멘!” 던 지시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선제후는 “루
터를 빼돌려 숨겨두어라. 그리고 어디 숨겨두
었는지 나에게도 말하지 말라. 그래야 누가
물어도 깨끗한 양심으로 모른다는 말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라는 상남자 냄새 풀풀 나
는 멘트를 남겼습니다.
루터는 어둠 속에서 끌려가 밤 11시가 되어
서야 한 성에 도착했습니다. 바로 아이제나
증언하는 루터
흐 근처의 바르트부르크(Wartburg) 요새였
습니다. 이 성안에서 루터는 머리와 턱수염을
기르고 기사복을 입은 채 ‘융커 외르크’라는
이름으로 위장하였습니다. 아무도 루터가 여
기에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이곳은 루터의
‘밧모섬’이 된 셈이죠. 루터는 1521년 5월부
터 1522년 3월까지 이 성에 갇혀 있던 9개월
동안 처절한 내적 투쟁을 겪으며 14권의 책을
저술합니다. 그 중 가장 위대한 작업은 신약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일이었습니다. 그것
도 11주 만에 끝마쳤다고 합니다. 이런 초인
루터가 증언하던 자리에 기념하여 만든 루터의 신발
적인 능력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하나님의 인
도하심과 섭리라는 것밖에는 도무지 이해할
결국 회의는 루터를 정죄하는 문서를 만들었 수 없는 능력입니다. 특별히 이곳에는 루터가
습니다. 이것을 ‘보름스 칙령’이라고 부릅니 성경을 번역했던 루터의 방이 보존되어 있습
다. 황제는 이 칙령에 사인을 했습니다. 니다. 기사들의 숙소 뒤쪽 나무로 된 협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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