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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교회의 공정하고도 엄정한 재판을 받게 해 었습니다. 때문에 보름스 회의에 참석하겠다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가장 실력 있는 학자 고 하는 루터의 이와 같은 결심에 대해서 루
를 죽음의 길로 넘겨주어야 하는지, 아니면 터의 친구들은 또 다시 극렬히 그를 말렸습
그를 보호하면서 로마 전체와 교회를 대항해 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루터는 친구들의 만류
싸워야 하는지 선제후는 갈피를 잡을 수 없었 를 거절하고 “보름스에 있는 집들 지붕 위에
습니다. 사방에서 루터를 내놓으라고 압박해 기왓장만큼이나 많은 수의 마귀들이 있을지
왔습니다. 반면 그럴수록 백성들 사이에서 루 라도 나는 가겠네”라며 자기 결심을 굳혔습니
터의 인기는 더욱 치솟았습니다. 주일이면 그 다. 1521년 4월 6일 루터는 주변 사람들의 만
의 설교를 들으려고 사람들로 성전은 가득 찼 류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보름스로 떠납니다.
습니다. 당시 시민들은 교황과 교회 지도자들
에 대한 불만이 컸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의 동요에 겁먹은 교황은 결국 면죄부
에 대해서 새로운 교서를 내렸습니다. “면죄
부는 교회가 정한 벌을 줄일 뿐 하나님이 죄
를 용서하셨다는 확인서는 아닙니다.” 교황이
한 발 물러선 것입니다. 자! 이제 그렇다면 누
군가 그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교 보름스 대성당 근처의 루터와 종교개혁가들의 동상
황청은 “면죄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을 테첼이
퍼뜨린 것이오. 테첼은 면죄부를 팔아 자신의
재산을 늘렸을 뿐만 아니라 사생아를 둘이나
낳았소.” 그 말은 사실이기도 했지만 진짜 비
열하네요. 이 소식을 들은 테첼은 라이프치히
의 한 수도원으로 도망가 몇 달 뒤 배신감에
치를 떨며 화병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보름스(Worms) 제국회의에서도 나라의 질 제국회의가 열린 보름스 대성당
서를 어지럽힌 죄로 루터를 소환하였습니다.
전임 막시밀리언 황제의 손자로 신임 황제가 1521년 4월 17일 드디어 제국회의가 시작되
된 카를 5세가 보름스 제국회의에서 루터의 었습니다. “그대는 그대의 위험한 주장을 계
문제가 다루어지기를 원했습니다. 다만 황제 속 펴겠다는 말인가요? 1500년 동안의 교회
는 루터가 보름스를 안전하게 왕복할 수 있도 의 역사는 모두 잘못된 것이고, 당신 혼자만
록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순교자 성경의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입니까?” 당신
얀 후스가 황제의 안전 귀가를 약속 받고도 의 주장을 취소 안할 겁니까?” 이에 그는 유
체포되어 화형당한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 명한 말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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