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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길로 들어선 제자를 보며 안타까워했습니                  다. 수많은 군중들과 학생들, 그리고 교수들

               다. “이제 자네는 더 이상 우리 수도회 사람                이 그 장면을 환호하며 지켜보았습니다.
               이 아니네. 교단 대표로서 난 자네의 이름을
               우리 수도회에서 빼기로 결정했네.” 사실 슈
               타우피츠는 루터를 버릴 마음이 없었습니다.

               수도회라는 사슬에 매이지 않도록 오히려 루
               터를 풀어준 것이었습니다. 이제 루터는 무슨
               말을 하든 수도회가 욕을 먹지 않을까 하는
               고민 없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신학논쟁이 라이프치히에서 일어났
                                                                 루터가 교황이 내린 파문서와
                                 1)
               습니다. 루터와 에크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비성경적인 서적들을 태운 참나무터
               핵심은 교황의 수위권과 공의회의 권위에 관

               한 것이었습니다. 루터는 교황의 수위권을 인                 단단히 화가 난 교황청은 마침내 1521년 1월
               정하지 않았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                  3일 ‘로마교황의 칙서’를 통해 루터의 파문을
               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성서에 근거가 없는                 공식적으로 공표합니다. 6개월 전에 이미 교
               어떤 것도 구원의 절대적인 것으로 주장할 수                 황은 그에게 파문장을 내렸지만 루터가 자신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100여 년 전 이단               의 가르침을 철회하려 하지 않자 루터의 파문
               자로 처벌된 후스를 옹호한다고도 말하였습                   을 정식으로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 파문 교서
               니다.                                      가 발행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공식적으로 이
                                                        제 루터는 파문을 당한 셈인 것입니다. 수도

               가톨릭 리더들과 늘 그렇듯이 아무것도 모르                  사였던 루터에게 파문은 종교적인 죽음을 뜻
               는 극단 추종 세력들에 의해 쾰른과 다른 도                 하는 것입니다. 이제 루터와 교황과의 싸움에
               시들에서 루터의 저술들이 불태워지는 일이                   서 황제, 귀족, 추기경 수도승, 수도원장 등 수
               발생하였습니다. 이에 ‘맞불 놓기’로 1개월 후               많은 사람들이 어느 한쪽의 입장에 서야 했

               이번에는 루터가 도시의 성벽 밖에 있는 큰                  습니다.
               참나무 아래에서 교황의 파문장과 다른 교황
               의 문서들을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                 루터가 비텐베르그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적으로 불태웁니다. 루터는 이때 교회법 책들                 않았을 때 성주인 프리드리히 선제후는 루터

               과 자신의 가르침을 비판하고 공격하는 로마                  를 다시 불렀습니다. 그는 카제탄 추기경에게
               카톨릭 지지자들이 쓴 책들도 불태워버립니                   서 온 편지를 내밀었습니다. 루터를 로마로 보




               1) 요한 마이어 본 에크( Johann Maier von Eck, 1486~1543)는 독일의 기독교 신학자이다. 잉골스타트 대학교 출신
               으로 개신교의 종교 개혁에 맞서 로마 가톨릭교회를 수호하였다. 교회법에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었으며 라이프치히 논쟁
               에서 교황의 권위를 근거하여 루터가 주장한 오직 성경의 권위를 대응하였다. 루터를 얀 후스파로 몰아서 파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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