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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1990년까지 오하이오주 티핀 (Tiffin, 어려운 현상이라고 본다.
Ohio)으로 이전하여 종과 종 부품을 제작하
였으나 이후 회사 매각으로 사업주가 바뀐 뒤 매일신보 1942년 2월 15일 자에 의하면, 싱가
에는 더 이상 종을 제작하지 않았고 2022년 폴 함락을 계기로 각 교회에서는 미국과 영국
사업을 정리하였다. 현재 힐스보로 시에서는 이 쫓겨 나가는 조종(弔鐘)을 올린 후 헌납을
매년 미국 독립기념일을 전후하여 ‘종의 축제 결정하였다고 한다. 또한, 교회 종의 헌납(공
(Festival of the Bells)’를 열어 그 역사를 기 출)을 과거 반세기 동안 이 땅에서 지켜온 미/
리고 있다. 5 영 숭배사상과 그들로부터 받은 자유주의를
일축하고 일본 기독교 정신을 본받는 것으로
2. 일제강점기의 시련과 보존 의미를 부여하였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부족한 전쟁 물
자를 충당하기 위해 조선의 교회 종들을 강제
로 공출했다. 처음에는 ‘전시물자활용협회’에
서 불필요한 절이나 교회의 기물 헌납 운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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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하였다. 그러나 이는 헌납으로 포장된 강
제 공출을 위한 서곡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후 1941년 8월 영등포교회, 수원교회, 그리고
도림교회로부터 식기 헌납, 1941년 9월 평양 매일신보 1942년 2월 15일 자 기사
창광산교회에서 교회 철문을 헌납하였다는
소식이 실렸다. 이와 같은 종의 헌납(공출)은 전국에 걸쳐 진
행되다가 1944년 2월 15일에는 아예 교회당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격으로 시작된 태 을 헌납하여 전력 증강에 협력하자는 기사가
평양 전쟁은 부족한 전쟁 물자 확보를 위해 더 매일신보에 실렸다. 1944년 광희문교회는 교
욱 강력한 헌납 운동이 식민지 일본 정부에 회 매각 (매각 대금 11만 원) 후 비행기를 헌
의해 전개되었다. 1942년 1월 29일 남산현교 납하였다.
회에서 75Kg 교회종을 헌납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같은 해 2월 9일에는 평양 강동장로교 이 모진 시기에 우리 교회의 경세종이 무사할
회에서 조선 최초로 실제 교회 종을 헌납하였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경세
다. 이후 4월 1일까지 평안남도의 560개 교회 종이 구리가 아닌 무쇠(철) 합금 주물이라 낮
중 552개 교회 종이 헌납(?)되어 총 30톤 물 은 가치로 인해 공출 대상에서 제외되었다고
량 (8,100관)을 확보하였다. 불과 몇 개월 만 보기도 하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이유는 '거
에 평안남도 98.6%의 교회가 헌납을 결정하 대한 크기와 무게' 때문이다. 종탑에서 종을
였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헌납 운동이 북 내리는 비용과 수고가 너무 커서 일제가 포기
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지역별로 진행되 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상동교회의 종 역
었다는 것은 강제 공출이 아니라면 설명하기 시 같은 이유로 공출을 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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