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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다 보니,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전통이 주류를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창
이루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조를 하십니다. 말씀 곧 히브리어 다바르는 그 어
본래 전통은 삼위일체입니다. 창조주를 잊어 왔을 근의 기원이 ‘자궁’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말씀하
때, 우리는 우리의 ‘근원’을 잊을 수 밖에 없고 우 셨다는 것은 ‘낳으셨다’는 뜻이며, 모든 피조물들
리의 주변에 대한 시각은 거룩함과는 거리가 멀어 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지게 됩니다. 그래서 기독교 국가에서 인간이 아닌 서 사람을 무(없음)에서 어떤 종이접기를 하듯 만
또 다른 하나님의 피조물에 대해서는 어떤 ‘물건’ 드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의 생명이
과 같이 생각하거나, 때로 파괴해 왔죠. 예수께서 시작됐다는 겁니다. 그래서 켈트 기독교인 중 최고
는 모두에게 빛과 비를 내리시는 아버지(성부)의 성 의 지성이었던 존 스코투스 에리우게나는 “모든 피
품을 닮으라고 우리에게 가르치셨고(마 5:45 하나님 조물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하나님께로 돌
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 아간다”고 했습니다. 창조주에 대한 신앙은 모든
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아버지의 뜻에 순종 우리를 포함해 이웃, 그리고 모든 자연의 피조물
하시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며 우리도 그렇 과 땅과 하늘과 이 우주 전체가 하나님으로부터
게 살라고 하셨습니다(마 26:39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나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하나님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께로 돌아간다. 대단히 낙관적인 세계관입니다. 그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 렇다면 모든 인간들과 피조물들은 신성하지 않을
렇다면 켈트 기독교에서 성부와 모든 피조물들을 수 없습니다. 필립 뉴엘에 의하면 켈트 영성의 인
어떻게 바라보았을까요? 간이해는 창세기 제 1장 24절 ’하나님의 형상’에 집
전통적으로 교회는 창조에 관해서 말을할 때, 중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루터의 학문적 뿌리
“무(없음)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를 교리적 인 어거스틴은 창세기 제 3장 인간의 원죄에 그 뿌
으로 따르고 있습니다. 인간은 없음에서 창조할 수 리를 두고 있죠. 인간의 근원은 선하냐, 악하냐 이
없고, 하나님만이 없음에서 있음을 만드신다는 것 논쟁인데, 성서적으로 볼 때, 원죄는 창세기 제 3
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성서에서는 무 장에 기록되어 있고, 하나님의 형상은 창세기 제 1
로부터의 창조라고 하지 않습니다. 창세기 제 1장 1 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서적으로 보면, 인간
절에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선한 존재인데, 후
에 타락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인간의 근원이 선
한가, 아니면 악한가 하는 것은 대단히 큰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인간의 근원이 악하다 한다면, 그
냥 구제 불능이 됩니다. 그 안에서 어떤 도덕적 선
함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성훈련도
불가능하고, 기도도 불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의 용
서함은 매일 매일의 대속이 되어야 하고, 예배는
죄를 씻는 과정이 되죠. 그런데 인간의 본래 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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