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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는 삶
혼인해도 교회 나가야 해~!
김영순 권사 (제2여선교회)
“혼인해도 교회 나가야 해~!”
저의 막내 이모님 고 채선엽 장로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이모님은 저만 보면 “너는 내 맘에 딱 들
어.” 라고 말하곤 하셨죠. 요즘 말로 하자면 아마 “너는 내 스타일이야.”이겠지요.
이화대학교 음악대학 교수이셨던 이모님은 저를 유별나게 사랑하시고 관심이 많으셔서 혼인할 때
도 이화대학 교목이시고 제가 기독교문학을 배웠던 김종필 감독님께 “우리 예쁜 조카가 혼인하는데
주례 좀 서주세요.”라고 부탁해주셨답니다.
제 남편은 미션스쿨을 나왔음에도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신앙생활은 연세대학에서
예배 참석한 것과 미국 유학시절 외로움에 한국사람 만나러 한인교회를 찾았던 게 전부였습니다. 그
도 그럴 것이 시아버지께서는 절을 세우실 정도로 불심이 가득한 불교신자셨으니까요.
친정과 시댁은 종교부터 달랐습니다. 그런 까닭에 혼인하고 나서는 교회 나가기가 쉽지 않았습니
다. 어쩌다 시간이 될 때 저 혼자 교회를 찾았던 게 고작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내내 ‘언
젠가는 가족들과 다 함께 교회에 나가야지’라는 생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초등
학교 들어가면서부터는 더 이상 늦추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족들에게 ‘우리 다 같이 정동교
회 2부 예배에 참석하자’고 ‘권유 반, 통보 반’으로 제 결심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주일이면 남편의 점
심 약속시간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서 늦잠 자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억지로 깨워서 정동교회를 나
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온 가족이 함께 ‘교회 중심, 예배 중심’의 생활을 하도록 만들고
싶었습니다. 사실 제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도 막내 이모님 덕입니다. 이모님은 제게 “너는 내 맘
에 딱 들어.”라는 말씀을 하신 뒤에는 꼭 “혼인해도 교회 계속 나가야 해”라며 제 등을 토닥거리셨거
든요.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롬 12:18)
그렇게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했지만, 큰며느리로서 집안 풍습을 거슬리지 않으려고 조상님 제사는
계속 지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들이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손자 이름을 다니엘로 짓겠다는
겁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직장에서 동료들과 성경공부를 하는데 다니엘서가 깊이 마음에 와 닿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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