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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철 권사 : 최병헌 목사님의 첫마음은 좌우명에도 잘 나타나 있어요. 좌우명을 보면 첫 번
째가 ‘사랑함’입니다. ‘부모와 자녀보다 주를 더 사랑하고, 자기보다 사람을 더 사랑하라’고
하셨어요. 이것이 바로 기독교 정신의 핵심이자 할아버님의 첫마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 집안 어른들로부터 최병헌 목사님에 대해 어떤 말씀을 들으셨나요?
백 권사 : 항상 들어왔던 것은 최병헌 목사님이 한학에서 기독교로 입문하셨다는 것입니다.
한학에 깊은 지식이 있으셨기 때문에 최초의 신학자라고 불리죠. 믿음으로도 받아들이셨
겠지만 학문적인 입장에서도 접근하셨습니다. 최병헌 목사님이 배제학당에 한문교사로 들
어오셨는데 동갑인 아펜젤러 목사님과는 영어와 한국어를 가르쳐주며 일상을 함께 하는
친구 사이였습니다.
최 권사 : 아버님으로부터 들은 것 중에 애국가 작사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최병헌 목
사님이 1902년부터 1913년까지 12년간 정동교회 2대 목사로 재임하셨는데, 재임 초기를
전후해 지금의 애국가 본문 4절의 전신인 ‘불변가’를 지으신 것으로 추정됩니다. 윤치호가
지은 황실가 후렴, 즉 오늘날 애국가 후렴 부분을 불변가 후렴으로 따와 합쳐진 것이 애국
가가 된 것입니다.
7살 아래였지만 같이 정동교회를 다녔던 윤치호와는 의형제를 맺었다고 합니다. 윤치호는
1920년대 이후 친일의 길을 걸었으나, 19세기 말 젊은 시절에는 김옥균, 박영효와 교류가
있었던 개화파 지식인이었고 1898년에는 독립협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안
타깝게도 윤치호의 나중 친일 행각이 드러나면서 애국가 작사 사실을 쉽게 밝히지 못했다
고 합니다.
Q. 최병헌 목사님의 구체적인 가르침이나 철학이 지금도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백 권사 : 제 책상에는 최병헌 목사님의 좌우명이 붙어있어요. 부인인 최경자 권사가 붙여
준 것인데, 그 내용을 보면 참 놀랍습니다. “부모와 자녀보다 주를 더 사랑하고, 자기보다
사람을 더 사랑하라”, “남을 판단하지 말 것”, “아이를 가르칠 때 온유한 말로 하되 과격하
게 말지 말라” 이런 내용들이에요.
“몸은 항상 수고하고 음식은 항상 적게 하라”는 말씀, “급히 성을 내지 말라”는 가르침을
따르려고 노력했거든요. 84세까지 건강하게 교회에서 찬양으로 봉사할 수 있었던 것도 할
아버님의 가르침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백세실버코러스 멤버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최 권사 : 그 좌우명을 보면 최병헌 목사님이 단순히 종교인이 아니라 삶의 철학자셨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남이 나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먼저 남에게 행하라”는 것은 성경
의 황금률을 한국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남의 잘못을 공격하기보다 잘한 것을 칭찬하라”
는 말씀은 지금 시대에도 꼭 필요한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2025 / 9·10 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