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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글







                 정동의 산 증인 이진주 전도사님을 추모하며

                                      -101세 여장부의 삶, 역사가 말한다.-













                                                  장수자 권사










               어떤 한 사람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은 쉬운 일                교회 오십주년 탑 앞(과거 이진주 전도사님 사
               이 아니다. 더욱이 하나님 품에 안겨있는 한                 택 자리)을 지날 때마다 잠깐잠깐 발걸음을 멈
               사람의 인생 여정을 표현할 능력이 감히 나에                 추게 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게 있는지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확신이 없

               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에게 있어 이진주                교회 창립 139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9월 26
               전도사님은 특별한 사람이었고 그분과 관련된                  일 하나님의 마지막 부르심을 받으신 이진주
               회상을 한다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감사한 일                 전도사님(이하 전도사님)은 1924년 강화에서
               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청탁을 받은 후                출생하셨다. 전도사님은 한국 전쟁으로 남편

               내가 오랜 고민 끝에 전도사님에 대한 글을 쓰                을 잃은 후 믿음과 인내, 그리고 사랑으로 세
               겠다고 결심하게 된 이유이다. 사실 정확히 이                따님(장혜경, 활란, 화경)을 키우면서 정동에
               야기하면 이 글은 전도사님에 대한 글이 아닌                 서 33년(1957년 5월-1981년 10월)에 걸친 섬
               내 삶에 있어 항상 같은 자리에 계셔 나의 삶                김의 삶을 사셨다. 그 삶의 노고가 새삼 대단

               과 분리할 수 없었던 한 사람에 대한 나의 기                하게 느껴지는 것은  대한민국 역사의 모든 격
               억 이야기이다. 정동교회에서나 사회에서나                   동기를 거치며 동일하게 세 자녀를 키운 어머
               내 개인의 삶의 기록들을 들춰볼 때 “아 그래.               니의 입장을 내 스스로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이때도 내 옆에 이진주 전도사님이 계셨었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 옆에는 든든한 남편이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진주 전도사님은 나                 언제나 함께 하였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나 전
               의 삶에 있어 매우 각별한 분이셨다. 아직도                 도사님의 옆자리는 항상 주님이 채워주셨다.


                                                                                       2024 / 11·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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