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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오솔길
삶의 조각들로 이어가는 사순절
염용희 전도사
지난 3년 나는 어떤 글도 쓰지 않았다. 그리고 다반사다. “가만히 있지 않고 내가 기도했다, 가만
그림도 그리지 않았다. 황망하게 남편을 하늘나 히 있지 않고 내가 도와주었다, 가만히 있지 않고
라에 보내야만 했던, 돌아보면 아프고 힘든 시간 내가 열심히 교회를 섬겼다”고 하는 중에 우리의
들, 어두운 시간들이었지만 ‘가만히’ 있어서 견딜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지난 3년 나에게 있어 화두
수 있었다.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가진 것을 잃어 는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가만히 있을 그 때에도
버리고, 놓치고, 아무 것도 잡을 수 없을 때 비로 주님께서는 내 삶의 한 조각을 채워 주셨다.
소 할 수 있는 가장 끝자락의 행동이었다. 출애굽
기 14장 13, 14절에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 어린 시절, 길거리에서 우연히 눈에 띈 언니(아
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가씨)의 뒤를 끌리듯이 따라 간 일이 있다. 그 언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니는 어린 나의 눈에 굉장히 세련되고 멋지게 보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였다. 짧은 치마에 다리 뒤에 길게 검은 줄이 그려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라는 말씀 있는 스타킹을 신고, 지금으로 치면 킬 힐쯤 되는
을 붙들고 살았다. 가만히 있는 것 밖에는 그 어 뾰족구두를 신은 언니였다. 이렇게 멋지고 세련되
떤 것도 할 수 없는 사람만이 철저하게 가만히 있 고 폼나는 언니는 어떤 집에서 살고 있는지 어린
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무엇인가 해보려고, 잊 마음에 궁금증이 발동했던 것 같다. 그 언니가 다
으려고, 잘해 보려고, 당당해 보려고 했다면 견딜 기울어져 가는 판잣집 같은 데로 들어가는 것을
수 없는 시간들 앞에서 ‘가만히’ 있는 게 답이었다. 보고, 끝까지 따라간 나는 짐짓 실망하지 않을 수
우리는 모두 이제 가만히 있어야 한다. 돌아보면 없었다. 어린 내게 그 충격이라니…! 누구에게 특
우리의 문제는 가만히 있지 않아서 생기는 것들이 별히 배운 적도 들어 본 적도 없었지만, 분수를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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