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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soon Magazine 2015 vol.04 Summer            따뜻한 이야기

                                                      글 신윤지 기자

지금은 일흔 할머니가 됐습니다. 숨어서 어루만지는 손의 기적과, 주님 밖엔      외로운 섬,
누구에게도 얼굴을 알리지 않은 베풂이 참 베풂임을 믿었던 두 사람은 상이나      버림의 섬,
인터뷰를 번번이 물리쳤습니다.                               건너의 섬에는
                                               두 성녀가 다녀가신 곳인가요
10여 년 전 오스트리아 정부 훈장은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가 섬까지 찾아와서     상처받은 사람들을
야 줄 수 있었습니다. 병원 측이 마련한 회갑잔치마저 ‘기도하러 간다’며       반세기 가깝게 보살핀
피했습니다.                                         두 수녀님의 사랑의 향기는
                                               민들레 씨앗처럼 바람에 날려
두 수녀는 본국 수녀회가 보내오는 생활비까지 환자들 우유와 간식비,          어두운 곳을 밝히고
그리고 성한 몸이 돼 떠나는 사람들의 노자로 나눠줬습니다. 두 수녀의         추운 세상을
귀향길엔 소록도에 올 때 가져왔던 해진 가방 한 개만 들려 있었다고 합니다.     덥혀 주리라고 믿습니다.

이제는 70세가 된 마리안 수녀님은                                                               61
“처음 왔을 땐 환자가 6000명이었어요. 아이들도 200명쯤 되었고, 약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한사람 한사람 치료해 주려면 평생 이곳에서 살아
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 두 분은 팔을 걷어붙이고, 환자들을 직접 치료하기 시작한 것이 40년이
된 것입니다. 할 일은 지천이었고, 돌봐야 할 사람은 끝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40년의 숨은 봉사... 이렇게 정성을 쏟은 소록도는 이제 많이
좋아져서, 환자도 600명 정도로 크게 줄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알려질까 봐,
요란한 송별식이 될까 봐 조용히 떠나셨습니다. 두 분은 배를 타고 소록도를
떠나던 날, 멀어지는 섬과 사람들을 멀리서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고 했습니다. 20대부터 40년을 살았던 소록도였기에, 소록도가
그들에게는 고향과 같았기에, 이제 돌아가 고향 오스트리아는 40년 세월이
흐른 지금 오히려 낯선 땅이 되었습니다.

지금 수도원 3평 남짓 방 한 칸에 살면서 소록도가 그리워 방을 온통 한국의
장식품으로 꾸며놓고 오늘도 ‘소록도의 꿈’을 꾼다고 했습니다.
그분의 방문 앞에는 그분의 마음에 평생 담아두었던 말이 한국말로 쓰여있다
고 있다고 합니다.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라’
“지금도 우리 집, 우리 병원 다 생각나요.
바다는 얼마나 푸르고 아름다운지...
하지만 괜찮아요.
마음은... 소록도에 두고 왔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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