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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140주년 기념 음악회







                                      멘델스존의 엘리야:

                        음악에 기록된 하나님의 역사(役事)















                                                  송주호 집사
                                                 (음악칼럼니스트)







               오라토리오                                    으며, 무대장치와 연출이 필요 없어 오페라에
                                                        비해 비용도 적게 들었다. 이후 오라토리오는
               18세기 초반, 영국 런던의 음악 문화에 영국                영국적 장르로 굳어지게 되었다.
               은 없었다. 지갑을 쉽게 연다고 소문난 런던

               의 애호가들로부터 한몫 잡으려는 이탈리아,                  본래 ‘오라토리오’는 교회의 기도실을 가리키
               독일, 프랑스 출신 음악가들로 가득했고, 대                 는 말로, 음악으로서의 오라토리오는 이곳에
               중 공연으로 인기가 많았던 ‘오페라 세리아’                 서 평신도들이 기도하고 성가를 부르는 전통
               가 표준 레퍼토리로 자리를 잡았다. 여기에                  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성경이나 기독교 신

               큰 역할을 했던 인물이 바로 게오르크 프리                  앙을 주제로 하며, 가사는 라틴어뿐만 아니라
               드리히 헨델(1685-1759)이었다. 그런데 18세            이탈리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등 모국
               기 중반 가까이 오면서 영국인들이 알아들                   어로도 작성되었다. 17세기 초에는 규모가 그
               을 수 없는 이탈리아어 오페라는 외면받기 시                 리 크지 않았으나, 18세기에는 레치타티보(서

               작했고, 헨델은 파산 위기에 내몰리고 말았                  사를 전달하기 위한 대본에 음정을 붙여 말
               다. 승부사 기질이 있던 그는 이에 굴하지 않                하듯 부르는 노래)와 아리아, 중창, 합창, 기
               았고, 결국 재기에 성공했다. 바로 <메시아                 악 등이 포함되어 오페라와 매우 유사한 규
               >(1742)를 비롯한 오라토리오 덕분이었다. 영              모로 확대되었다. 하지만 극으로 공연되지는

               어로 가사를 써서 런던 사람들이 알아듣기                   않았다. 그 이유는 즐기기 위한 세속음악인
               쉬웠고, 성경을 내용으로 하여 접근성이 좋았                 오페라와 구분되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렇


                                                                                        2025 / 9·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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