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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세의 아펜젤러의 손에
아펜젤러는 어떻게 들려 있었던
조선에 오게 되었나? 한글 성경의 비밀
아펜젤러는 스위스에서 이민해 온 독일계 이민 6세로 1885년 아펜젤러가 제물포항에 내렸을 때, 그의 손에는
1858년 미국 펜실베니아주에서 태어났다. (독일어와 영어 모두 능통) 한글로 된 『마가복음서』와 『감리교 교리문답』이 들려 있었다.
뉴저지주 드류신학교에서 목회자 과정을 밟으면서 어떻게 가능했을까?
평생 해외선교에 헌신할 것을 서약하였다.
바로 일본에 먼저 와 있었던 이수정(李樹廷 1842~1886) 덕분이다.
드류신학교 당시 가장 가까운 친구 워즈워드는 조선 선교사를 지원했고, 이수정은 1882년 신사유람단의 비공식 수행원으로
아펜젤러는 일본 선교사를 희망했다. 일본에 건너갔다가 기독교인이 되었고 성경 일부를 한글로
그러나 워즈워드가 어머니의 중병으로 조선 선교사를 포기하자 번역하여 인쇄하였다.
아펜젤러가 그를 대신해 조선 선교사로 가기로 결심했다.
아펜젤러가 조선에 들어올 때,
그런데 아펜젤러의 이력은 선교본부가 원하는 것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바로 이 한글 성경을 가지고 온 것이다.
당시 조선은 미개척 전도지에 정치상황이 불안한 선교 3급지로 분류되었고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
‘선교나 목회에 상당한 경력이 있는 자’를 필요로 했었다. 우리말로 된 성경이 있었다는 것은
아펜젤러는 약간의 교사경력에 갓 신학교 졸업예정자였으나 선교역사에 대단한 일이라 평가된다.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조선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아펜젤러는 1885년 1월 신학교 마지막 시험을 치르고 일본에서 성경을 한글로 번역한 이수정과 『마가복음젼셔』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채 스물일곱의 나이로
1885년 2월 조선 땅으로 가기 위한 선교사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과장된 문체, 지나친 한문 투, 빈번한 오역 등의 문제가 있어
초기 선교사들은 좀 더 완벽한 한글 성경 번역작업에 집중했다.
그 결과 아펜젤러와 레이놀즈, 게일이 주도하여
1900년에 한글 『신약젼셔』를 완역, 출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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