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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펜젤러 이전에도  워싱턴행 열차에서

 조선 땅에    조선 선교의

 선교사가 왔었다  싹이 트다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조선 땅에 첫 발을 내디딘 선교사는  1882년 조선과 미국 사이에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었고,

 독일 루터교 출신 귀츨라프(Karl F. A. Gutzlaff, 1803~1851)이다.  조선은 1883년 미국에 보빙사 (報聘使 답례 사신)를 보냈다.
 1832년(순조 32) 충남 보령 고대도에 정박하여  보빙사 사절단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워싱턴까지 가는 미 대륙횡단철도에서

 약 한 달간 머물면서 한문 성경을 배포하여 전도하였고,  감리교 목사 가우처(John F. Goucher, 1845~1922)를 만나게 된다.
 한문 성경에 주를 달아 주기도문을 한글로 처음 번역하였다.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가 섞인 만남 이후에 가우처는 선교비를 쾌척하며

 아픈 이들에게 약도 주고, 감자 농사법도 알려주었다.  미국 감리교 선교본부에 조선 선교를 제안하였다.


 이로부터 30여 년 후 대원군의 쇄국정책에 의해  다음 해 1884년, 사전답사를 위해 일본주재 감리교 선교사

 평양 대동강변에서 순교 당한 사람이 있으니
                   매클레이(Robert S. Maclay, 1824~1907)가 조선에 들어왔다.
 그가 영국인 선교사 토마스(Robert J. Tomas, 1840~1866)이다.  매클레이는 일본에서 친분을 맺었던 김옥균을 통해 고종에게

 1866년(고종 3)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에 승선하고
                   간접 선교의 전략으로 “병원과 교육사업를 윤허해 달라”는
 조선의 복음을 위해 여러 곳을 다니다가  청원서를 보냈고, 고종이 이를 허락하였다. (김옥균은 불교신자였으나,

 평양 만경대에서 조선군의 불화살을 맞게 되었다.  조선의 개화를 염원하며 기독교 선교를 주선했다고 한다)
 토마스 선교사는 마지막까지 조선인에게 성경책을 나눠주며  그리고 1885년 아펜젤러가 조선 선교사로 파송되어 들어오게 된 것이다.

 복음을 전하려다 참수당했다고 전해진다.
 아펜젤러가 조선 땅을 밟기 19년 전의 일이다.



 1866년, 평양
 토마스 선교사
                   1882            1883           1884            1885
                   조미(朝美)          조선 보빙사,        일본주재  매클레이      아펜젤러, 최초의
                   수호통상조약          미 대륙횡단열차에서     선교사 조선 방문,      감리교 선교사로
 1932년, 고대도                        가우처 목사를 만남     고종에 청원서         조선 입국
 귀츨라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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