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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이틀 전  전교인이

 이필주 목사   3.1운동 대열에-

 사택에서 있었던 일  정동제일교회


 1919년 2월 27일, 3.1운동 이틀 전-  정동제일교회는 이필주 목사, 박동완 전도사를 필두로

 정동제일교회 구내 이필주 목사 사택에서 비밀스런 모임이 있었다.  김진호, 정득성 등 교회 지도자들이 일제에 잡혀가고

                   대부분의 교인들이 3.1 운동에 가담했기 때문에,
 일제의 눈을 피한 이 모임에서 독립선언서와 독립청원서의 초고를  다른 교회보다 더욱 가혹한 핍박을 받았다.
 최종 검토하고, 민족대표 명단을 최종 확정하였다.  3월 1일 시위에서는 교회 내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학생뿐 아니라
 또한 3월 1일을 기해 일제히 만세시위를 할 것을 결의하고  청장년 교인들도 시위현장에 적극 나서서 많은 교인들이 체포되고,

 독립선언서의 전달방안을 논의하였다.  봄부터 가을까지 정동제일교회 저녁예배가 중단되기도 하였다.

 한편 학생대표들은 2월 27일과 28일에 이필주 목사 사택에 모여
 독립선언서의 배포장소와 배포방법을 논의하였다.  3.1운동 당시 정동제일교회에서 비밀리에 <독립신문>이 제작되었다.
                   그 시절 독립신문은 등사기로 인쇄한 유인물이었다

 당시 이런 모임은 대란죄로 크게 처벌될 것이라
                   이 유인물은 정동제일교회 파이프오르간의 송풍실 안에서,
 목숨을 내건 행위임을 서로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필주 목사 사택에서 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이필주 목사이기에, 정동제일교회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3.1 만세운동 이후 상해, 하와이 등에서 이어진 독립운동에도

                   정동출신들이 큰 활약을 하였다.
                   모두들 참신앙인이자 참애국자였다.















 3.1독립선언서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정동제일교회 현순, 손정도, 이필주, 박동완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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