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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름은 김란사. 남편 하상기의 성을 따라 하란사로 불리기도 한다.

          스물네살 나이에 기혼자로서 이화학당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결혼한 여자는 받아줄 수 없다고 세 번이나 퇴짜를 맞았다.

          이에 어느 날 밤 이화 학당장 프라이(Lulu E. Frey)를 만나

          하인이 들고 있던 등불을 끄고 이렇게 호소하여 입학허가를 받았다.

          “내 삶이 이렇게 어둡습니다.

          내 인생에 빛을 찾을 기회를 주세요.”





          정동제일교회에서 <미국의 남녀평등한 활동>이란 서재필의 강연을 듣고
          당시 여성의 몸으로 스스로 미국 유학을 결심하였다.

          미국 웨슬리안대학교에서 한국여성 최초로 문학사 학위를 획득하였다.
          김란사는 귀국 후 자신이 배운 모든 것을 여성을 위한 일에 바쳤다.

          유학 경험으로 고종의 통역도 맡아 하였다.


          미국에서 교포들에게 모금운동을 하여 정동제일교회에

          파이프오르간을 구입, 기증한 사람도 김란사이다.
          태평양을 두고 동서로 갈려 있는 동포들의 힘을 모아 얻은 파이프오르간으로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독립을 주시리라 믿었다.
 정동의 인물 9

          1919년 고종의 밀지를 받아 파리강화회의 참석을 계획하였으나,

 정동제일교회 파이프오르간의 공로자  고종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김란사의 꿈은 수포로 돌아갔고
 김란사      북경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金蘭史 (1875~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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