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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주는 22세 때 구(舊)한국군에 들어가 십여 년을 군인으로 보내며
동학란과 의병봉기 때 그 진압에 참여하여 동족상잔의 아픔을 경험하였다.
스물아홉의 늦은 나이에 결혼하였으나,
늦게 본 어린 자식 둘을 한꺼번에 잃으면서 교회를 찾기 시작하였다.
3.1운동 당시 정동제일교회 담임목사로 일했고,
목사 사택에서는 3.1운동 직전의 중요한 비밀집회가 이루어졌다.
이필주 목사는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2년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에도 신사참배에 끝까지 항거하다 병으로 사망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3.1운동 하루 전인 2월 28일
이필주 목사는 마지막 가족모임이 될지 모르는 예배를 드리며
“고생과 수고가 다 지난 후 광명한 천국에 편히 쉴 때에
주님을 모시고 나 살리니...” 라는 찬송가 610장을 불렀다고 한다.
정동의 인물 8
금후에도 또
3.1운동 민족대표 33인으로 옥고를 치르다 일본 독립운동을 할 것인가?
경찰총감부
이필주 목사
그렇다, 어디까지든지
李弼柱 (1870~1942)
독립운동을 할 것이다.
이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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