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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물 공간





 우리가 사는 세상




 진소정           “전복죽을 끓이고 싶었는데 전복을 구할 수가 없었어.”
 0000yy@hanmail.net
               언니 손에는 소고기죽과 예원이가 먹을 미역국이 들려 있었다.
               언니는 또다시 언니를 방어적으로 만들었던 그 경험들을 잊고 인간관계를 시작하
               려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언니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다 소용 없어. 외국에서 맺는 인간관계가 다 그런 거지 뭐.”
 필리핀에 와서 알게 된 언니 중에 나에게 항상 이렇게 조언하는 언니가 있었다.
               언니! 죽 먹고 약 먹으니 훨씬 나아요.
 언니는 내가 여기에서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에 대해 항상 회의적이었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더라도
 “어차피 몇 년 뒤에 한국으로 돌아가면 모르는 사이만도 못한 사이가 될 텐데 뭘.”
               돌아가서 사는 게 바빠 연락도 자주 못하더라도
 언니는 이곳에서 맺는 인간관계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물론 내가 그 조언을 받
               그러다가 연락이 끊어지더라도
 아들이고 소극적인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외국 생활을 오
               아플 때마다, 죽을 먹을 때마다 언니 생각이 날 것 같네요.
 래한 언니의 말이 신경 쓰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고마워요.
 그리고 몇 달이 흘러서야 언니의 그 방어적인 태도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이해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은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다.
 할 수 있게 되었다. 언니는 나처럼 짧게는, 1년 길게는 5년 머무르다 다시 본국으
               부족한 내가 모여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가며 살아가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로 돌아가는 파견 근무로 여기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생활을 다 정
               그 부족함을 채워가는 방식이 때론 힘들고, 그래서 의심이 들지라도 말이다.
 리하고 필리핀으로 이민을 온 사람, 즉,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나에게 찾아오더라도
 따라서 언니는 항상 사람들을 보내는 입장이었다. 정말 몇 년 동안 정을 많이 주었
               피하거나 두려워 하지말자.
 던 친구들을 한국으로 보낸 것만 10번이 넘는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간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채워주시려는, 혹은 깨닫게 해주시려는 깜짝 선물 일 테
 친구들과는 연락이 뜸하다 끊기고 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니 말이다.
 그런 경험들이 언니에겐 상처가 되었고, 언니를 방어적으로 만든 모양이었다.

 지난해 8월 어느 날, 편도염에 지독하게 걸린 적이 있었다.
 편도염은 몸살을 동반했고, 첫 날은 일어날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  본인이 전공한 바이올린으로 정동젊은이 교회 예배를 섬기던 진소정 자매는 하나
 나는 물론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그런데 예원이 역시 아침으로 바나나와 우유를
               님의 축복으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예쁜 딸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이루
 먹는 것을 보니 겁이 덜컥 났다. 점심은 사서라도 먹여야 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바  었습니다. 결혼 후에도 계속해서 쉴물 공간을 삶의 소소한 이야그들 안에서 웃음과
 로 그 언니가 찾아왔다.  눈물을 담아 지켜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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