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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물 공간





                            그리워질 오늘을 위하여




                                                                  진소정                              신랑은 나의 힘듦과 수고 따위는 전혀 관심 없는 듯 한 그 단 한마디로 대꾸했다.
                                                           0000yy@hanmail.net
                                                                                                   하지만 나는 그 한마디의 의미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저 힘들기만 했던 지난 1년의 시간이 어쩌면 나에게 참 소중한 시간이었는지
               힘들었다. 그렇다. 2015년은 그냥 힘들었다. 아니, 힘들다는 걸 인지 할 만한 여유                                    모른다.
               조차 없었던 것 같다. 지난해 말부터 남편 없이 돌도 안 된 애기를 데리고 해외 이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이 시간이 그리워질 것이다.
               사를 준비했고 대학원마지막 학기가 끝나고 3일 후 필리핀으로 들어왔다.                                             우는 예원이를 안고 몇 시간을 달랬던 순간, 비오는 마닐라에서 삼겹살을 구우며
               필리핀으로 들어오자마자 전쟁과 같은 삶이 시작되었다. 박스 채 쌓여있는 이삿                                          밤새 남편과 수다 떨던 시간, 필리핀 사람들의 미소...
               짐들은 절망적이기 까지 했다. 업무에 적응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고 바쁜
               신랑은 딱히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무엇을 어디에서 사야하는지, 어디에 있는지 아                                        소중한 것들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존재를 드러낸다.
               무것도 알지 못했고, 게다가 나의 영어 실력은 딱히 좋지 못했다. 또한 이 곳의 치                                      그래서 실수 많고, 정신없던 우리의 젊은 날들이 못 견디게 그리워질 날이 올 것
               안은 매우 좋지 않아 맘대로 돌아다닐 수 조차 없었다.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었                                        이다.
               고, 갑작스레 새로운 환경에 놓인 예원이는 내 옆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말할 것이다.
               매일매일 그렇게 긴 하루를 보냈다. 제대로 씻을 시간조차 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내가 한국을 떠나 올 때 모두들 우울증과 외로움에 대해 걱정했는데 전기세 내                                          “그 때 참 행복했어."
               는 것조차 복잡한 이곳에서 나는 그것들을 느낄 정신이 없었다. 어찌 보면 다행
               인 일이었다.
               1년이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이제 새로 온 누군가에게 간단한 조언을 해줄 수 있
               을 정도로 적응해 가고 있지만 지금도 역시 이 곳이 못 견디게 짜증날 때가 있다.
               특히나 필리핀의 날씨와 벌레들는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그 날까지 적응하지
               못하리라 확신하고 있다.

                                                                                                   *  본인이 전공한 바이올린으로 정동젊은이 교회 예배를 섬기던 진소정 자매는 하나
               “내가 여기에 어떻게 왔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어.”
                                                                                                   님의 축복으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예쁜 딸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이루
               지난여름, 내가 남편에게 말했었다.                                                                 었습니다. 결혼 후에도 계속해서 쉴물 공간을 삶의 소소한 이야그들 안에서 웃음과
               “이 때가 그리워질 날이 올 거야.”                                                                눈물을 담아 지켜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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