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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물 공간

                우리가 겪는 시련의 최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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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00yy@hanmail.net

     “내가 더 이상 살 수 있을까 싶기도 했어.”
     15층 언니의 말이었다.
     15층 언니는 내가 필리핀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고 있는 언니다.
     그 날은 언니가 병원 문제로 한국에 다녀오느라 몇 개월 만에 함께 차를 마시던
     날이었다.
     그리고 그 날 언니는 필리핀에 도착한 직후부터 지금까지 겪고 있는 힘든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 곳에 잘 적응하지 못했어. 가족도, 친구도, 내 직장도 없는 이 곳에서 말
     이야.”
     언니는 필리핀에 도착한 이후 2년 동안 매일 남편과 싸웠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일들이었어. 남편이 퇴근 하고 돌아오면 온갖 것
     들을 트집 잡아 싸웠어. 모든 게 다 마음에 안 들었거든.”
     언니의 그런 생활은 뱃속에 있던 둘째에게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언니는 그렇게 처음으로 뱃속의 아기를 잃었고, 바로 얼마 전, 두 번째 유산을 해
     야 했다.
     “내가 더 이상 살 수 있을까 싶었어.”
     너무 담담한 언니의 목소리가 오히려 더 가슴 아프게 들렸다. 때론 울지 않는, 아
     니 울지 못하는 얼굴이 더 슬플 때가 있다.
     둘째를 임신한 몸으로 끼니도 잘 안 챙기는 언니 때문에 실은 나도 많은 걱정을 했
     었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미역국 하나를 놓고 먹더라도 언니를 집으로 불러
     식사를 함께 했다. 하지만 또다시 그런 일이 생기니 나 또한 참 안타깝고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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