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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에서 드레스덴까지, 순례일행 여정지도
드레스덴 노이마르크트 광장 드레스덴 슐로스 광장 군주의 행렬 작품 앞
2)
elector) 의 영지였습니다. 작센 선제후 프 일행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였습니다. 하지
리드리히 3세는 제국과 교회에 수배당한 종 만 우리는 갈 길이 멀었습니다. 드레스덴 노
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를 보호하여 개혁을 크 이마르크트 광장 앞 프라우엔 교회 앞에 세
게 도왔으니, 드레스덴은 종교개혁의 요람이 워진 마르틴 루터의 동상을 뒤로하여 인증샷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름다운 경치와 중 을 찍고 열혈 청년 루터를 만나기 위해서 다
후한 건물들, 궁전, 오페라하우스 등은 우리 시 비텐베르크행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1) 보헤미아에서 살던 모라비안들은 1722년에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개신교 탄압을 피해, 독일의 드레스덴의 니콜라우스
진젠도르프 백작의 영지로 이주하였다. 3년 뒤에는 1백명이나 되는 신도들이 영지로 이주했는데, 진젠도르프 백작
자신도 모라비안들과 기도회를 가질 정도로 모라비안의 경건주의 운동에 적극적인 참여를 하였다. 복음주의자들인
모라비안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청 제국, 페르시아, 북극 등에서 활발한 해외선교를 벌였고, 존 웨슬리의 감리교 창시
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유가공품 제조 등의 노동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직업윤리를 실천하였다.
2)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선정하는 역할을 하였던 신성로마제국의 선거인단이다. 선거후라고도 한다. 선제후는 백작,
공작 그리고 대공과 같이 대단히 높은 직책을 맡고 있었으며, 위계상 신성로마제국의 봉건 제후들 가운데 왕 또는
황제 다음으로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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