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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시험을 포기하고 예수를 만나 눈뜨다
최병헌은 1858년(철종 9) 출생으로
젊은 시절 한학을 공부하고 과거에 응시했을 정도의 유교적 인물이었다.
그러나 존스 선교사의 어학선생과 배재학당의 한문교사를 거쳐,
마침내 1893년 아펜젤러에게 세례를 받고 1902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최병헌을 두고 아펜젤러는 ‘나의 신실하고도 유능한 조력자’라는
수식어를 붙여주었다. 가히 바나바와 사도 바울의 관계라 볼 수 있다.
아펜젤러의 뒤를 이어 2대 담임목사가 되다
최병헌이 목사안수를 받은 지 얼마 안 되어 아펜젤러가 순교하고
그 후임으로 12년간 정동제일교회 담임목사로 목회하며,
국권 상실의 시기에 구국의 일념으로 신앙운동을 전개하였다.
푸른 눈의 선교사가 온 지 한 세대 만에 최병헌이란 탁월한 목회자를 통해,
이 땅에 한국적 기독교가 만들어진 것이다.
유, 불, 선을 통달하고 그 위에 그리스도를 전파하다
아펜젤러가 서양 기독교 교리를 조선에 처음 소개했다면,
최병헌은 유, 불, 선에 대한 탄탄한 학문 위에
정동의 인물 5 기독교 복음을 해석한 ‘한국적 기독교 신학’의 선구자였다.
한국최초의 기독교 신학논문인 <죄도리>를 발표였고
『성산명경』, 『만종일련』 등의 역작을 남겼다.
아펜젤러와 나란히 하는 한국의 목회자
최병헌 목사 최병헌은 한국최초의 종교학자이자 민족주의 목회자로 존경을 받았다.
崔炳憲 (1858~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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