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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기독교에서

          조선의 기독교로

          뿌리내리다


                   1902년 아펜젤러의 급작스러운 죽음,

                   하나님은 아펜젤러를 왜 그리 급하게 부르셨을까?



                   사실 초기 기독교 전파는 외국인 선교사의 희생과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의 지원에 빚진 바가 크다.
                   그러나 일찍이 아펜젤러는 배재학당의 교육사업뿐 아니라

                   신학부를 개설하여 조선인 본처사역자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노병선, 한용경, 전덕기, 송기용, 유치겸, 김창식, 최병헌, 문경호 등이
                   아펜젤러에 의해 준비된 사역자였다.



                   아펜젤러의 사후, 1903년 아펜젤러와 동갑인 최병헌이
                   정동제일교회 조선인 담임목사로 세워졌다.

                   아펜젤러가 서양 기독교 전통에서
                   조선의 종교, 문화, 사회분야에 걸친 근대화의 단초를 제공했다면

                   최병헌은 동양종교, 문화전통에서 기독교 복음을 해석한
                   ‘한국적 기독교 신학’의 선구자였다.



                   급작스레 아펜젤러를 잃은 아픔이 컸지만 정동제일교회는 오히려
                                                                                                아펜젤러에 이어 2대 담임목사가 된 최병헌. 뒷줄 정가운데 인물.
                   이른 시기에 조선인 사역자를 임명하고, 한국적 기독교를 정립하고,                                         1913년 정동계몽유치원 졸업식 사진이다.

                   민족적인 목회로 나아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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