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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그 옛날에  칠십 평생을

 여성목사를 배출한  하루같이 헌신한

 한국감리교    이수산나 전도사


 여성목사를 본 적이 없다고?   정동제일교회 이수산나 전도사님은

 21세기에도 여성목사를 불허하는 교단이 몇몇 있기는 하다.
                   칠십 평생을 오로지 주님께 몸바치고 42년 동안
 그런데 한국감리교에서는 1931년에 14명의 여성목사를 배출하였다.
                   하루같이 한 교회에서 젊은 청춘의 몸으로
 이는 1968년 미국감리교에서 첫 여성목사를 배출한 것보다
                   백발이 휘날리며 구부러질 때까지 교역하셨다.
 무려 35년 이상 빠른 것이었다.
                   그 공로를 표창키 위하여 정동교회에서는
 1931년, 전도사역 8년 이상 된 사람에게만 목사안수를 주었는데
                   돌아가실 때까지 원로 전도사님으로
 조선인은 없었고 미국 여선교사 중 14명이 목사안수를 받았다.
                   모시기로 결정하였다.
 비록 당시 조선인 여성목사를 배출하지는 못했지만
                                              한복을 입은 단아한 모습의
 조선인 감독과 목사가 안수를 베푼 예식이기에
                                                    이수산나 전도사
 한국교회사에 기록될만한 선각자적 사건이었다.
                   위 내용은 1958년 <감리회보>에 적힌 기사이다.

                   이수산나 전도사는 1917년 협성여자신학교를 졸업하고
 1955년 한국인 최초의 여성목사가 탄생했다.
                   정동제일교회에 전도부인(여전도사)으로 파송되어
 전밀라(全密羅)와 명화용(明和蓉) 여성 감리교목사가 그 주인공이다.
                   42년을 한결같이 헌신하였다.
 전밀라는 전도부인으로 시작하여 목사안수를 받고
                   공식 은퇴를 하고 원로전도사로 활동을 계속하다가
 서울 양광교회 담임목사가 되었다.
                   1963년 하나님 품에 안기었다.
 후문에 따르면 당시 여성목사에게 설교를 들을 수 없다고
 일부 신도들이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고 한다.
                   평생을 사역에 헌신하고 은퇴하는 여성목회자를

                   모든 교인이 ‘교회의 어머님’으로 모시고 여생을 동행하는 것,

                   역사와 전통의 정동제일교회가 할 수 있는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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