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 - chungdonghistory
P. 34
아펜젤러의 17년 사역 죽는 날까지
91kg 건장한 청년이 한글 성경 번역에 몸바친
60kg으로… 아펜젤러
1885년 조선에 도착했을 때, 27세의 아펜젤러는 선교사들의 업적 중 재조명할 것이 있다면 바로 근대 한글을 재발견하고
키 179cm, 체중 91kg으로 건장한 청년이었다. 널리 보편화한 것이다. 훈민정음은 1446년 세종대왕의 높은 뜻으로
당시 조선인들과 나란히 서면 어디서나 눈에 띄는 외모였을 것이다. 창제되었지만 조선 지도층에 의해 외면당했기 때문에 당시까지
“아펜젤러는 신체적으로 늠름하였지요.” 언문(여자들의 글)이라고 천대받았다.
“지적으로 항상 깨어 있으며 학자풍이었습니다.
따뜻한 마음에 동정심이 많은 성품이었죠.” 그러나 개신교 선교사들은 한글의 놀라운 잠재력을 알아보고,
아펜젤러에 대한 친구와 동료목사의 평가이다. 한글로 인쇄한다면 서민들도 모두 글을 읽을 수 있고
따라서 기독교를 전파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900년, 42세에는 같은 키에 체중이 60kg으로 외국인이 사전도 없이 번역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려 30kg이 빠져있었다. 머리는 희고 허리는 굽어 있어서 아펜젤러, 언더우드 등이 주도하여 1900년 한글 『신약젼셔』
가장 친한 친구도 못 알아볼 정도였다고 한다. 번역을 완료하고 정동제일교회에서 감사예배를 드렸다.
첫 조선 선교사로 이 땅을 밟았던 아펜젤러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문자 그대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모두 희생했던 것이다. 아펜젤러는 조선에 도착한 다음 해부터 성서번역위원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고, 구약 번역 회의에 참석하러 가던 중 선박사고를 당해
순교함으로 죽는 날까지 성경 번역을 위해 일하였다.
신약전서 맨 앞 페이지에 선교사들의 자필
서명이 있다. 위에서부터 언더우드, 게일,
조선에 입국하기 직전 일본에서의 선교사들. 맨 오른쪽이 아펜젤러이다. 1990년 완역된 신약전서 마태복음 첫 페이지 스크랜턴, 아펜젤러, 레이놀즈.
32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