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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물 특집





                              버리고 비우고 지우기




                                                               이군호 권사                              러내야 하지 않을까요? 0.1 퍼센트의 사금을 채취하기 위해서 99.9 퍼센트의 모래가
                                                            ikislee@hanmail.net
                                                                                                   루가 버려지는 것이죠.


                                                                                                   제가 논문을 쓰거나 매달 <쉴만한 물가>의 기고문을 쓸 때에도 비슷한 일이 반복
                                                                                                   됩니다. 제가 전하고자 하는 이런저런 내용들을 컴퓨터 화면에 시시콜콜 모두 적어
                                                                                                   놓은 뒤에 단락을 이어가며 정리하고 논리적인 흐름에 맞게 글을 다듬어 가다보면,
                                                                                                   처음에 적어두었던 여러 생각들과 표현들, 혹은 단편적인 아이디어들을 그냥 버리
                                                                                                   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원고지 20장 정도의 분량에서 15장 정도만이 최종
                                                                                                   적으로 남게 되는 셈이죠. 이것은 글쓰기의 퇴고과정에서 누구나 겪게 되는 일이라

                                                                                                   고 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얻고자 할 때, 온전히 그 소망하는 것만을 얻을 수는 없
                                                                                                   다는 생각이 듭니다. 뭔가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또 다른 뭔가를 버리고 내려놓게
                                                                                                   되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합니다. 달리 말하면, 부산물이 반드시 발생한다고 볼 수
                  초등학교 시절의 미술시간이나 공작시간을 기억하십니까? 색종이나 도화지로 예                                        도 있다는 것이죠. 그 부산물은 쓸모가 없어 버려지는 운명이지만 처음엔 우리가 원
               쁜 문양이나 이런저런 모양의 본을 뜨기 위해서는 먼저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죠. 이                                       했던 무언가를 위해 꼭 필요했던 것이었습니다. 자동차의 엔진을 가동하기 위해 휘
               어서 밑그림을 따라 가위로 원하는 문양과 모양을 오려내게 됩니다. 그러면 원래의                                        발유를 태우면 에너지를 얻음과 동시에 배기가스와 물이라는 부산물이 반드시 발
               색종이와 도화지에서 남은 부분들은 아깝다는 생각에 다른 용도로 쓰기도 하지만,                                         생하죠. 이 에너지를 통해 자동차가 움직이게 되지만, 배기가스는 배기관을 통해 밖
               거의 대부분 그대로 구겨져 버려지곤 합니다. 우리가 필요한 문양을 얻기 위해서 적                                       으로 배출되어야만 합니다. 시동이 걸려있는 자동차의 꽁무니에 보이는 배기관 끝

               지 않은 분량의 색종이를 어쩔 수 없이 버리는 이와 같은 일들은 주변에서 흔히 발                                       에 물방울이 맺혀 떨어지는 것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휘발유가 타고 남은 부산물
               견하게 됩니다. 튼튼한 쇠를 얻기 위해 철광석을 용광로에 넣고 녹이면 시뻘건 쇳물                                       로 물방울이 생겨난 것입니다.
               의 표면에 부유하는 불순물들이 생기게 되는데, 반드시 제거해야만 양질의 쇠를 얻
               을 수 있습니다. 마치 사골 국을 끓이면서 위에 뜨는 기름들을 떠서 버리는 것과 비                                      사람의 몸이 건강과 원활한 신진대사를 유지하기 위해서 뭐가 필요합니까? 라고 묻
               슷한 과정입니다. 밥숟가락 하나 분량의 사금(砂金)을 얻으려면 잘은 모르지만 아마                                       는다면 아마 대부분 음식을 떠올릴 겁니다. 건강한 음식과 깨끗한 물을 섭취하는 것,
               도 사금이 들어있는 한 트럭 분량의 모래를 물과 섞어 흘려보내면서 조금씩 체로 걸                                       물론 가장 중요할 겁니다. 하지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누구나 알다시피 바로 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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