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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공감
어릴 적 감사의 추억
켜보니, 그때 선생님은 창원대학교 성악과
에 재학 중이던 3, 4학년의 대학생이었습
니다. 우리보다 약 열 살 정도 많으셨을 선
생님은 노래도 뛰어나게 잘 부르셨고, 곡
해석도 탁월하여, 성가대를 재미있고 유익
하게 이끄시는 능력의 소유자셨습니다. 어
떤 곡에는 소프라노 솔로를 넣기도 하고,
또 어떤 곡에는 소프라노와 알토가 함께하
김창훈 담임목사 는 파트를 구성하셨습니다. 저는 보이 소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당시 국민학교 5 프라노보다는 알토를 담당했는데, 남자 중
학년이었을 때, 아버지께서 담임하셨던 에는 목소리가 높은 친구 철우만이 소프라
마산 제일교회는 새롭게 예배당을 건축 노를 맡아 가끔 솔로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했습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세련된 예 정OO 선생님과 함께했던 우리 어린이 성
배당은 높이 솟은 종탑과 넓은 예배당, 가대 대원들은 마산 제일교회에서 가장 행
그리고 지하에 마련된 예배실과 교실을 복한 아이들이었습니다. 선생님을 통해 음
갖춘, 당시로서는 매우 신식이었습니다. 악과 찬양의 아름다움을 배울 수 있었기 때
그 지하 예배실에서 1학년부터 6학년까 문입니다. 우리가 두 파트로 나뉘어 찬양
지의 어린이들이 모였고, 어린이 성가대 을 부를 때, 그 두 음이 만들어내는 아름다
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있었습니다. 저는 운 화음으로 찬양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
친구인 형진, 은준, 철우와 함께 어린이 습니다. ‘오 나의 자비로운 주여’라는 찬양
성가대원이 되기 위해 오디션에 참여했 곡은 우리가 여러 번 연주했던 곡으로, 지
습니다. 한 곡의 찬양을 불렀고, 다행히 금도 그 곡을 들으면 어린 시절 성가대 활
도 합격했습니다. 탈락한 친구가 있었는 동의 추억이 되살아납니다.
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합격했다는 기 그리고 또 우리가 행복했던 기억은 선생
쁨은 지금도 여전히 생생합니다.
님이 우리와 최선을 다해 놀아주셨던 모습
어린이 성가대를 지휘하고 책임지셨던 입니다. 성가대 연습을 마치고 놀이터에서
분은 바로 정OO 선생님이셨습니다. 당시 다방구를 할 때, 선생님은 늘 우리와 함께
저희는 열두 살, 열세 살의 어린이들이었 하셨습니다. 여러 명이 둘러앉아 '아이 엠
지만, 선생님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커 보 그라운드', '고, 백, 점프', '전기 놀이' 등
이는 어른이셨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 을 가르쳐 주신 것도 선생님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