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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리고 ‘그 날’
이병도 목사
11월 어느 목요일 저녁의 광경은 지금도 또렷 아마도 마음이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
하다. 겠지만, 그날 이전의 모든 시간들은 희미하게
광화문 7번 출구 앞에 서 있던 그날, 조금은 흩어져 버렸다.
쌀쌀한 바람이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딘
가에서 흘러나오던 노랫소리는 귓가에 머물 마치 내 인생의 달력이 그날을 기점으로 다
렀고, 퇴근길을 재촉하며 지하철역을 오가는 시 시작된 것처럼, 11월 그 날은 지금도 내
사람들의 발걸음은 분주했다. 그 순간의 모든 안에서 가장 따뜻한 초겨울의 저녁으로 남아
소리와 빛, 온기와 냉기는 여전히 내 마음에 있다.
남아 있다.
11월의 그날이 오늘까지 내게 특별한 이유는
그날은 한 동기 목사의 소개로 아내를 처음 그 만남이 단순히 과거의 추억으로 머물지 않
만난 날이었다. 그 만남 이후, 11월의 그날은 고, 지금까지 그 관계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
내게 가장 소중한 ‘그 날’이 되었다. 이다. 만약 이후에 아내와의 관계가 지속되지
않았다면 그날 역시 다른 만남들과 다르지
돌이켜보면, 그 무렵 소개팅이나 만남이 여러 않게 내 기억에서 점점 사라졌을 것이다. 그
번 있었지만, 불과 몇 주 차이밖에 나지 않는 렇다면 그날은 더 이상 ‘그 날’이 되지 않았을
이전의 만남들은 놀랍게도 거의 기억나지 않 것이다.
는다.
8 CHUNGDONGSEM

